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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주하는 일

코로나 시대의 산책 기록.

적막 속에서 고요를 찾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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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주하는 일

오월의 틈에서.

아침에 커피를 내려 마시려고 컵을 씻는데 손가락 끝을 스치는 오돌토돌한 질감이 있었다. 수돗물을 끄고 다시 천천히 만져봤더니 웬걸, 림 자리에 조각이 하나 떨어져 나가서 작게 움푹 파여 있었다. 집에서 설거지는 대개 남자들의 일이라, 순간 콧김이 훅훅 뿜어져 나왔다. 너무나 아끼는 컵이지만 두툼하고 튼튼해서 걱정 없이 맡겼더니 그 걱정을 기어코 만들어내었다. 어떻게 이렇게 없는 듯 있는 듯 공정 불량인 듯 아닌 듯 칩이 생겼는지, 별스러운 능력도 다 있구나 싶었다. 굉장히 교묘하여 입술이 닿지도 않고 눈에 크게 띄지도 않아, 모르고자 하면 운을 조금 첨가해서 영영 모를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알아 버렸으니 마음 아픈 구석이 되었다. 그래서 하나 더 주문하려고 유일하게 팔던 직구 스토어를 찾아 들어갔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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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주하는 일

책 이야기가 없는 책 이야기.

어떤 환경에서 독서하는 것을 좋아하는지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30대에 들어서 가끔 행하는 내 작은 여정 하나를 이야기하고 싶다. 자고이래로 읽는 행위에는 먹는 행위를 곁들여야 두뇌 회로가 배로 빛나며 회전하는 법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어느 책에선가, 태풍에 엉망이 된 선로를 복구하느라 운행을 멈춘 열차에서 내려 마을에서 필립 k. 딕의 소설책과 포도 한 봉지를 사들고 돌아와서는 자리에 앉아 책을 읽으며 포도를 몽땅 먹어치웠다는 즐거운 이야기를 했다. 그 때문에 그가 가진 "화성의 타임슬립"에는 군데 군데 포도즙이 얼룩져 있다지만 뭐, 종이책에 무언가를 묻히는 일에 아무렇지 않은 성격이 못 되어서 이 이야기는 후다닥 넘어가겠다. 어쨌든 내게 독서하기 가장 좋은 날은 역시 유유자적한 휴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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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져드는 일

Chilly Chili Night.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지금 굵은 빗방울이 창문을 마구 두드리며 쏟아져서, 설레어 듣던 음악도 잠시 끄고 빗소리를 만끽하고 있다.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 소리를 먼저 들어야 한다. 바람도 간간이 휘몰아치는, 소리가 멋진 밤이다. 저녁에는 칠리크랩 소스로 칠리새우를 만들어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싱가포르에서 먹은 점보씨푸드의 칠리크랩이 매우 취향이라 소스팩을 사왔는데, 집에서 게를 튀기기는 힘들어 새우를 튀겼다. 사실 새우를 기름에 집어넣은 순간부터 감바스를 향한 욕구가 솟아 중도 하차하고 와인이나 딸까 하는 충동이 일었지만 꾹 참고 해먹은 보람이 크다. 달걀은 설명서대로 두 알, 잘 풀어서 저어주었고 새우는 식감이 어떨지 몰라서 반은 껍질을 벗겼고 반은 그대로 튀겼다. 볶음밥도 곁들여 남은 소스를 듬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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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주하는 일

이런 저런 일요일.

스크린 터치가 가능했던 랩톱을 오랫동안 아껴왔으나 수명이 다해서, 반 년 정도 다른 회사의 평범한 랩톱을 사용했다. 반사적으로 스크린에 손을 올리는 실수도 차츰 줄어들어 적응했다 싶었더니, 이번에는 펜S가 손에 들어왔다. 새 랩톱에 호기심이 동한 인간은 다시 터치 스크린에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구축한 생활 방식을 무너뜨리는 중이다. / 그래도 터치 스크린은 확실히 평범한 랩톱 이상의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드니 좋다. 실제로 행하는 일은 별 것 없을지라도. / 손으로 써오던 필사 노트의 내용을 OneNote에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손글씨의 매력을 잊은 건 아니지만, 문득 읽고 싶어질 때마다 곧바로 손에 쥘 수 있는 경우란 거의 없기에. 무엇보다 체력과 시간이 그렇게 여유롭지 않은 나이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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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어가는 일

여름의 매력.

요즘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많이 올랐던 용담 섬바위. 캠핑하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섬바위에서 나오다 용담댐과 용담호가 보여 들렀다. 사람도 없고 바람도 없이 잔잔하게 퍼지는 물결에 비친 하늘이 아름다웠고. 태양광 사업 부지 바로 옆에 옥수수밭이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이만큼 벌떼의 웅웅거리는 소리가 웅장하게 들려, 가만히 서서 한참을 귀기울였다. 예약해둔 펜션에 갔더니 온갖 채소와 과일이 방치되어 있고. 마음껏 갖다 먹으라고 해서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바비큐를 해먹을 때 매콤하게 무치려고 부추를 끊어내고 빗물에 싱싱해진 상추를 뽑고, 속이 연한 고추를 몇 개 땄다. 아직 반질반질하니 푸른 여름 호두나무를 실물로 본 일은 처음이었고, 단단한 복숭아는 맛이 덜 들었지만 그럭저럭 새콤달콤했다. 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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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어가는 일

전주 수목원.

오랜만에 전주에 내려갔다가 수목원이 괜찮다던 말이 떠올라서 들렀다. 한국도로공사에서 운영하며 입장료는 없었다. 비가 간간이 내리다 그친다고 해도 날은 후덥지근해서, 여유 되는 대로 반 정도만 천천히 돌아보고 나왔다. 수국은 자리를 잡아 커가는 중이었고 옹기종기 심긴 꽃 무더기 위로 나비와 벌새가 날아다녔다. 색색의 연꽃이 핀 정원이 특히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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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어가는 일

세 번의 아침 식사.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의 'RISE' 맛 ☆☆☆☆☆ 분위기 ☆☆☆☆ 좋았던 점: 달콤한 과일. 맛있는 커피를 포트째. 괜찮은 비건 섹션. 아쉬웠던 점: 우유는 평범한 맛을 고르자. 모든 맛의 요거트 중에 없는 플레인 요거트.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의 'MELT CAFE' 맛 ☆☆☆☆ 분위기 ☆☆☆☆☆ 좋았던 점: 다양한 채소 요리, 다양한 커리. 아쉬웠던 점: 드넓은 공간이 주는 기대감에 못 미칠 정도로 빵이 차지하는 비율이 지나친 느낌. 디 아웃포스트 호텔의 'NATIVE KITCHEN' 맛 ☆☆☆ 분위기 ☆☆☆☆ 좋았던 점: 호텔 주변에 식당이 그다지 없으므로 그 자체로 소중함. 다양한 달걀 요리 섹션. 아쉬웠던 점: 구색은 갖췄으나 위의 두 호텔에 비해 부족한 요리 가짓수와 평범한 맛. 때때로 강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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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어가는 일

폭포와 공항.

여행은 막바지에 다다랐지만 싱가포르의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처음으로, MRT를 타고 창이 공항으로 이동했다. 일요일 저녁의 꼼짝 못 하는 도로 사정을 생각하면 바람직한 선택이기도 했고, 한국 지하철과는 얼마나 비슷하고 또 다른지 궁금했다. 탑승 방식이나 생김새나 크게 다를 것이 없었지만 지하철 내부는 뭔가를 먹는 사람 하나 없이 매우 청결했고, 벽에는 각종 규제 내용과 함께 'No durians' 사인이 붙어 있었다. 다행히 우리가 내릴 역은 아니었지만, 듣자 하니 양쪽 문이 모두 열리는 역도 있다고 한다. 창이 공항에 도착하여 체크인을 하기 전, 공항 내에 위치한 '쥬얼 창이'라는 쇼핑몰에 먼저 들렀다. 건물은 빽빽한 수목으로 둘러싸인 유리 온실 형태의 거대한 돔이었다. 천장에서 5층 높이의 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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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어가는 일

디 아웃포스트 호텔의 수영장.

블라인드를 올리자 화창하기 그지없는 날씨가 마지막 날 아침을 반겼다. 오늘은 무슨 활동을 해도 무척 덥겠구나 싶었다. 체크아웃 전까지 수영장에 몸을 묻을 생각이기에 그다지 염려 섞인 생각은 아니었지만. 조식을 먹고 늘어지려던 몸을 붙잡아 수영복으로 갈아 입었다. 고요한 아침의 수영장에는 몇 명의 어른들만 파묵칼레 구역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요가 수업이 진행되었는데, 투숙객을 대상으로 한 원데이 클래스 같았다. 일찍 알았더라면 참여했을까, 조식 타임의 여유와 비교하면서 선베드 하나를 잡았다. 구름은 또 드넓게 깔려와 햇빛이 가끔씩 드러났다 사라졌다. 책을 읽기에 좋은 날씨였다. 해변이든 수영장이든, 뭍자리 한 구석을 차지하고 누워서 책을 읽는 사람들을 향한 반가운 감정이 있다. 그렇기에 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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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어가는 일

밤의 수영장 아침의 수영장.

슈퍼트리쇼도 끝난 저녁, 수영복을 입고 가운을 뒤집어쓰고 최상층의 수영장으로 향했다. 다음날 조식을 먹은 뒤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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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어가는 일

가든스 바이 더 베이.

방 두 개를 예약하면서 커넥팅룸을 요청했는데 직원은 아쉽게도 준비된 방이 없다고 대답했다. 어차피 체크인 전까지의 일정이 있으니 크게 아쉬워하지는 않고 도어맨에게 짐을 맡긴 뒤 호텔 뒤편에 있는 '가든스 바이 더 베이'로 향했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라니 상당히 꾸밈 없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리나 베이 옆에 붙은 이 거대한 정원은 숲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광활했는데, 한쪽에는 두 개의 유리 온실이 커다랗게 솟아 있고 특별하게 꾸민 분수가 군데 군데 설치되어 있으며 그 사이를 열대 지방의 수목으로 빼곡히 채운 싱가포르의 명소였다. 하지만 나의 목적지는 간단하게 야외 정원의 중앙으로, 한낮이 되기 전에 산책을 마치고 호텔 반대편의 쇼핑몰로 건너 가 점심을 먹는 것이 목표였다. 호텔 문을 열고 밖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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