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마주하는 일

이런 저런 일요일.

스크린 터치가 가능했던 랩톱을 오랫동안 아껴왔으나 수명이 다해서, 반 년 정도 다른 회사의 평범한 랩톱을 사용했다. 반사적으로 스크린에 손을 올리는 실수도 차츰 줄어들어 적응했다 싶었더니, 이번에는 펜S가 손에 들어왔다. 새 랩톱에 호기심이 동한 인간은 다시 터치 스크린에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구축한 생활 방식을 무너뜨리는 중이다. / 그래도 터치 스크린은 확실히 평범한 랩톱 이상의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드니 좋다. 실제로 행하는 일은 별 것 없을지라도. / 손으로 써오던 필사 노트의 내용을 OneNote에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손글씨의 매력을 잊은 건 아니지만, 문득 읽고 싶어질 때마다 곧바로 손에 쥘 수 있는 경우란 거의 없기에. 무엇보다 체력과 시간이 그렇게 여유롭지 않은 나이가 되면서 경제적인 생활 방식으로 몸이 기울기 시작했다. 스스로 아날로그 덕후라 하던 때도 있었는데 이렇게 디지털 라이프에 터를 잡아 간다. 웃기고 편하다. / 필사 노트는 글씨 연습이라거나 문장 연습을 위한 것은 아니었고, 책을 읽다 나타난 밑줄 긋고 싶은 것들을 담아왔다. 그저 문장의 구조가 예뻐서 적은 것도 있고, 유용한 정보라서 적은 것도 있고, 계속 기억하고 싶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적기도 했고... 그러나 대개는 그때의 마음을 두드리고 위로하거나, 경계하며 가르치는 문장이다. 그런 것들을 랩톱으로 하나씩 쳐가며 과거를 회상하다가, '이 작가가 사실 개새끼라는 걸 잊지 않기를 바라' 하는 마음으로 적어놓은 문장도 발견했다. / 아무리 시도를 해보아도 홍차와 친해지기란 어려웠다. 어째서인지 홀가분한 마음으로 포기를 하고, 덩달아 차맛을 들인 뒤에 더 유용하게 쓰려던 찻잔을 몇 조 새 주인을 찾아 보냈다. 워낙 음료를 즐기지 않는 삶을 살아와서 그러는지도 모른다. 주스든 탄산 음료든 스스로 찾아 마시는 취미가 없어서, 누가 권해도 고민하다 대개 생수를 택하는 편이다. 유년 시절부터 (아마도 교육으로) 키운 몇 안 되는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했지만, 뭐 어쨌든 수많은 그리고 아름다운 틴 케이스와, 셀 수 없이 다양한 찻잎 향에 심취하는 일과는 영영 멀어진 것 같다. / 커피가 정말 특이 케이스인 거지. / 빈티지 잔은 늘 희소성이라는 가치가 높아 되파는 일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때로는 점점 귀해져 가격이 올라갔고 이번에 내놓은 잔 중엔 플로렌틴이 그랬다. 그래도 업자들보다 늘 저렴하게 판매한다. 마음을 먹으면 빨리 해치우고 싶은 조급한 성격이라서. / 아무튼 그렇게 팔고 나면 종종 '가격 때문에 기대하지 않았는데 상태가 깨끗하고 좋아서 놀랐다'는 문자를 받는다. 거짓을 말하거나 사실을 숨기는 일은 상상만 해도 몸이 떨리는 콩알만한 간을 가졌으니 뭐. 스크래치가 거슬린다거나 전사 프린트가 완벽하게 맞물리지 않는다거나 하는, 내 눈에도 께름한 상태인 물건은 팔지 않는다. 내가 그런 일을 당해서 우리집에 들어온 물건이라면 더더욱. 문자를 보낸 사람들도 겪어봤던 거겠지. 빈티지라는 구실이 작용하여 크게 흠 없는 이상 별다른 설명 없이, 혹은 슬쩍 가리고 사진을 찍어 좋은 퀄리티인 양 판매하는 양심이 부족한 사업자들이 있다. 뒤엎어 보면 한쪽이 붕 뜨는 비뚤어진 소서라든지, 구멍이 뽕뽕 파여 커피를 담기 찜찜한 컵이라든지, 수작업이라는 핑계로 군데 군데 벗겨진 금박이라든지. 모두 아무런 설명 없이 내 손에 들어온 것들이고, 문의를 해봤자 '빈티지 특성상'이라는 말로 넘어가버리는 반품 불가능한 사유들이었다. 직접 보고 구입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매번 전국을 돌며 발품을 팔 수도 없으니. / 옛 서울역사에서 열린 '그림도시' 행사를 너무 늦게 알아 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타바코북스의 기탁 작가님도 새 작품을 몇 점 들고 나가셨던데. 통신 판매도 곧 시작되기를 바란다. 기다리기 괴롭구나. / 어쩌다 유튜브에서 영화보다 더 유명한 영화 음악들을 듣고 주르륵 내 음악에 리스트업하고, 드라마 유명 ost를 듣고 또 주르륵 리스트업했다. 행복하다. 보지 않은 영화들이 새삼 궁금해질 만큼. / 새벽에 잠깐 비 내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눈을 뜬 이후로는 계속 꿉꿉한 바람만 들이치고 있다. 빗소리를 잔뜩 듣고 싶다. 어느 지역에만 몰아내려 곤란하게 하지 말고 이쪽에도 나눠 주었으면.

 

 

': 마주하는 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로나 시대의 산책 기록.  (0) 2020.05.25
오월의 틈에서.  (4) 2020.05.22
책 이야기가 없는 책 이야기.  (0) 2019.08.01
복숭아와 커피 外.  (0) 2019.07.26
다정.  (0) 2019.07.16